
이번에 들어가면, 꽤 오랫동안 안에 있어야할 것 같다.신종플루가 빨리 사그라들어야할텐데.비틀즈 엘범들어보기일본어 매일 - 꾸준히 공부하기매일 일기쓰기빌려서 소설 많이 읽기가져간 책들 읽기다 읽고 주문해서 또 읽기이제 좀 시간을 빽빽하게 쓰자~!
구글/트윗/페이스북/오픈ID 등을 이용한 사이트 가입(또는 커뮤니티 구축)을 지원. 회원 얼굴을 트위터의 팔로워처럼 보여주고 댓글 및 뉴스레터 서비스도 지원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댓글서비스가 트윗 등과 연동되도록 하려고 시도하다가 설치했으나, 댓글 기능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 듯하다. 일단 시험삼아 설치해둠.
원래 안정적인 RSS발행을 위해 사용중이었는데, 블로그에서 발행한 글을 트위터에 자동으로 보내주는 기능이 새로 생겨서 Active로 설정해둠. 단축주소가 goo.gl 이라는 점이 재미있음.
하루동안 트윗한 문장을 모아서 지정한 블로그에서 자동 발행되게 한다. 텍스트큐브, 티스토리, 싸이 등 한정된 블로그만 지원하는 단점이 있다. 이번 기회에 실험용으로 운영하는 텍스트큐브 블로그에 연결해 두었다.
구글리더에도 있는 기능인데, 최근에 발견했다. 같은 그룹이 된 사용자와 일종의 게시판을 형성해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 RSS로 발행된 포스팅의 제목과 본문 일부를 편리하게 게시하고 메모할 수 있다. 충성도 높은 한RSS 유저라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못 알아본 사이에 부가기능(스킨, 글꼴 선택 등)이 몇가지 더 생기고, 그런 기능들은 유료로 제공된다는 것을 알았다.
직접 해본 것은 아니지만 반가운 소식이라서 적어놓는다.
"내가 잘못된 길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내가 가진 경험과 통찰과 무기가 부족했고 그래서 나는 잘못된 길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평가란 것이 얼마나 가혹해야 하는가" (조댕)
"잃는 게 많을 것이 분명한 사건을 선택했다면 스스로 긴장하는 수밖에는 없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각성에 한해서 주체는 나뿐이다." (곰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을 빛나게 할 것인가" (그대)
소대장의 명령(?)으로 30분 남짓 소대주위를 돌았습니다. 이곳에서 운동은 상병 이상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나는 이병 주제에 아픈 몸 덕분에(?) 막내일과 청소도 열외하고 운동을 하였습니다. 좁은 공간인데도 갖가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들, 상황실 근무하는 사람들, 기관총 분해조립 연습하는 사람들, 플스하는 사람들,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 저녁시간이면 누구나 이중에 한 가지를 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나는 청소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까 이 모든 것이 더 이상해 보입니다. 저들도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요. 아마 왕따, 경계인, 이방인, 외국인, 괴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그럴 것입니다.
땀, 근육의 긴장, 생각, 관찰, 거리두기 - 30분간의 운동이 내게 준 선물입니다. 늘 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 날 나는 초소에서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초소에 서 있었습니다. 문득, 나는 그곳에 나무처럼 심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무에게는 무릎이 필요 없지요. 나의 무릎도 퇴화하는 중인지, 이별의 통증이 왔습니다. 나는 거기서서 내 눈앞의 기지 외곽순환도로를 지나다니는 사람, 자전거, 자동차와 그 너머의 기차와 비행기를 보았습니다. 조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과연 나와 같은 ‘계’(종속과목강문계)일까요?
아니, 나는 식물일지도 모릅니다. 묘목을 심어 기르는 정원 같은 기본군사훈련단에 심어지고 길러지다가 이곳으로 옮겨 심어진 것입니다. 거름 같은 밥을 먹었고, 언 땅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잤습니다.
먼저 옮겨 시어진 나무들은 햇빛도 가리고 뿌리가 깊고 넓어 양분들도 많이 가져갈 수 있지요, 나는 하늘도 땅도 좁고 모자란데 병까지 들어 시든 나무 같군요. 시든 나무 옆에 새들이 날아와 앉았습니다. 참새들은 겁도 없이 내 옆에서 파리를 잡아먹고 날아가곤 했습니다.
머리위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들이 내 곁에 떨어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영화 ‘거룩한 계보’처럼 말이에요. 나는 그 충격으로 의병제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담벼락을 넘어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밀항하는 상상도 여러 번 했습니다만, 난 아직 일본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못하답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머릿속의 상상은 이렇게 웃자라기만 하겠죠. 풍성함은 없이 같은 생각만 반복하면서...... 아, 또 옮겨 심어지고 싶군요.
어느 병장이 소대가 막장이 되고 있다며 정색을 하고 어른 흉내를 낸 후, 집합과 잔소리가 수십 분간 반복되었습니다. 맨 마지막에 내 동기와 맡선임만 남았을 때, 그는 어떤 서운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울었습니다.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이 나이가 되면 미간의 미세한 찡그림과 코와 눈의 움직임으로 그 정도는 알 수 있게 됩니다. 분명 어떤 오해가 나와 그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또한 계급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위로해야 했던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 역시 어떤 균열을 두려워하였나 봅니다. 그는 내 옆자리에서 숨을 죽여 울었고,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이장혁을 들었습니다.
“ 주여 어디에
어디 계시나이까
정녕 우리를 버리시나이까.”
매일 계속되는 과도한 진지함과 짜증, 어른 연습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정말 소대가 막장이 되는 걸까요? 그런 것들은 도대체 무엇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이아나 무궁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하게 높으신 분이 다녀갔어요.
함께 초소에서 근무도 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옆집 아저씨 같고 말도 친근하게 걸었어요. 그의 아들도 헌병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휴가 나오면 삼겹살과 치킨만 먹다가 복귀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딸은 서울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려 통학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소란하고 딱딱한 우리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습니다. 그는 추리닝을 입고 이불을 걷어차고 자고 있더군요. 이렇게 그는 리더의 좋은 덕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격’이기 이전에 ‘시스템’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다정한 말 한마디와 배려보다 그의 존재자체가 나에게는 직접적입니다. 그의 존재자체가 부담이자 구속인 겁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좋은 선임을 만났냐고. 나도 특기나 자대, 보직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떤 선임을 만났는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몇 주 안되지만 그 곳 생활을 해보니 이 질문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좋은 선임과 나쁜 선임. 어떤 기준으로 나뉘는걸까. 좋은 선임이라고 하면 잘 해주는 사람, 나쁜 선임이라고 하면 그곳 속어로 '꼽창'이라고 불리는, 날 괴롭히는 사람일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누구나 좋은 선임이 되고 싶어한다. 좋은 선임은 사랑받기 때문이다. 누가 후임에게 욕을 먹고 싶어할까. 하지만, 누군가는 나쁜 선임이 되어야한다. 욕하고, 잔소리하는 선임없이는 위에서 요구하는 결과는 만들어지지 않기 떄문이다. 그곳의 규칙은 사회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해야하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더 분명한 곳이다.
'짬'이 찬다면 좋은 선임이 되기 쉽다. 나에게 웃으면서 대해줄 수 있다. 그러나 웃으면서 대해준다고 해서 그가 꼭 좋은 선임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웃음과 함께 그의 지위와 그가 놓인 곳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그와 나 사이의 후임들에게 좋은 선임이어서는 안된다. 고상하게 떠다니는 백조가 물 아래에서 끝없이 물장구를 치는 것처럼 그는 후임들에게 요구한다. 더 갈궈라, 더 조져라. 아마 뒤에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맡선임들은, 또는 근기수 선임들(그 짬이 찬 선임과 나 사이의 선임들 말이다)은 나쁜 선임들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런 악역을 맡은 것이다. 늘 그렇듯 악역은 어쩔 수 없이 맡게 된다. 나는 그들을 쉽게 미워할 수 없다. 물론 나는 그들의 말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들의 말이 듣기 싫을 때가 많다.
게중에 간혹, 나에 대한 잔소리와 친근함을 함께 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좋은 선임'이라고 부른다해도, 아쉽지만 그런 사람들은 드물다. 그런 사람들이 한 명쯤 있어도, 그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나에게는 많은 선임들이 있고, 그 나머지 선임들은 그냥 '좋은 선임'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