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루니아 찬가>

"오웰은 이 <신문 기사 등을 인용한 긴 장>은 <프랑코와 공모했다는 비난을 받은 트로츠키파를 변호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지만, <일이 년 시간이 지나면 보통 독자들로선 흥미를 느끼지  못할 이런 장이 거기 끼어 있다는 것은 책을 망칠 것이 분명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트로츠키파의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가 아니었다면 그는 <아예 그 책을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오웰로서는 그 장을 생략할 수 없었다고 덧붙인다."(옮긴이의 말)

“전선을 보고 나자 나는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이것이 전쟁이란 말인가! 적과는 만날 수도 없는데! 나는 참호 밑으로 머리를 박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총알 하나가 불쾌한 소리를 내며 내 귀를 스치더니 뒤편 흉벽에 가 박혔다. 슬프게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는 그때까지 총알이 내 머리 위를 스쳐갈 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동작은 본능적인 것 같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적어도 한번은 그렇게 고개를 숙인다.”(p.34)

“들것에 실려 전선을 내려오며 모포 사이로 눈부신 듯 바깥을 내다보는 하얀 얼굴의 열다섯 살짜리 스페인 소년을 보면서, 이 소년이 위장한 파시스트임을 증명하는 팜플릿을 쓰고 있는 런던이나 파리의 말쑥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p.88)

“모든 전쟁이 똑같다. 병사들은 전투를 하고, 기자들은 소리를 지르고,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람은 잠깐의 선전여행을 제외하면 전선 참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p.90)

"병사들은 나를 다시 눕혔고, 누군가가 들것을 가져왔다.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총알이 목 한가운데를 관통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나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입 가장자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처음 떠올린 것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  ㅡ 생각해보면 결국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 ㅡ 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그 감정을 매우 생생하게 느낄만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혔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 (p.240)

"노동자들에게는 ㅡ 도시의 프로레타리아에게는 ㅡ 누가 이기든 결국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스페인은 기본적으로 농업국가이다. 농민들은 정부의 승리에 의해 이익을 얻을 것이 틀림없었다. 적어도 몰수한 토지의 일부는 농민의 소유로 남을 터였다. … 전쟁이 끝났을 때 정권을 장악할 정부는 어쨌든 성직 계급과 봉건제에 반대할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당분간은 교회를 제어할 것이고 국가를 근대화할 것이다. … 그러나 프랑코는 단순히 이탈리아와 독일의 꼭두각시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봉건적 대지주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케케묵은 교권주의적·군국주의적 반동을 표방하는 존재였다. 인민전선이 사기일지는 모르나, 프랑코는 시대 착오였다." (p.234)

"작은 몸집의 장교가 잠시 망설이더니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했던 것이다. 그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깊은 감동을 주었는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먼저 당시 분위기를 상기해야 한다 ㅡ 의심과 증오가 가득한 무시무시한 분위기. 사방에 거짓말과 헛소문이 난무했다. 게시판에는 나 같은 모든 사람이 파시스트의 간첩이라고 악을 써대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경찰서장 사무실 바깥에 서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한다. 그곳은 밀정이나 하수인과 같은 지저분한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 내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일을 기록하는 것은, 그것이 왠지 스페인적인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최악의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스페인  사람들의 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페인에 대해서 매우 나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이 거의 없다. … 스페인 사람들이 관대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그들은 20세기에 속하지 않는 고귀한 종족이다. 이 점 때문에 스페인에서는 파시즘이라 해도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견딜 만한 형태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스페인 사람들 중에 현대 전체주의 국가가 요구하는 지독스러운 효율성과 일관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p.285)

"나는 우연히 정치적 의식과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정상으로 취급되는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었다. … 그것은 지구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게임 속에서의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한 국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만큼은 지속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아무리 욕했을지라도 나중에는 뭔가 신기하고 귀중한 어떤 것을 접해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냉담과 냉소보다는 희망이 더 정상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공동체, <동지>라는 말이 대부분의 나라에서처럼 허위가 아니라 진정한 동지적 관계를 의미하는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우리는 평등의 공기 속에서 숨을 쉬었다." (p.139~141)

2010/08/29 23:33 2010/08/2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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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광화문 구경하고


지난 주 금요일, 새로 만든 광화문을 보았다. 야경으로 보니 이순신-세종대왕-광화문 라인이 눈에 참 잘 띈다. 눈도장 찍고, 입대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라멘집에 갔다. 사케 한잔에, 그 날의 불안과 어리광이 생생히 떠올라 부끄러웠다. 지금 난 왜 그날의 나에게서 어리광을 보는가? 난 뭐가 변한 것일까.
2010/08/27 00:00 2010/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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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지하철 열차 안내판


이제 엘시디 최신 안내판이 생겨서, 넌 필요없어, 라며 철거될 안내판의 쓸쓸한 모습이다. 계단에 발을 걸칠 때 "땡땡땡", "따르르릉" 소리가 나면 난 마구 뛰었다. 늦은 밤, 난 혹시 막차를 놓친 건 아닐까 걱정하며 저 <이번열차>를 보곤했지. 내가 기다린 건 <내(외)선순환>이었고, 싫어한 건 <신도림행>이었다.
2010/08/26 23:48 2010/08/2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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